국정원 조사 중 롯데호텔에 날 부른 두 아가씨
1,599 0 0
주성하 2021.08.25 15:29


저번 시간에 제가 서울에 와서 첫 지하철 타던 이야기 해드렸습니다. 바닥에서 기는 법을 확실히 배우며 제가 도착했던 곳이 잠실 롯데호텔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왜 갔을까요라고 끝냈으니 그 이야기 계속해서 하려 합니다.

대성공사 딱 들어가면 조사가 시작됩니다. 거기서 조사받고 북으로 다시 간 탈북자가 몇 십 명은 넘으니 20년 전 조사 방법은 비밀도 아니죠. 저의 경우 우선 독방에서 들어가게 한 뒤 종이를 이만큼 두터운 걸 갖고 오더니 지금까지 살았던 것을 펜으로 100페이지 이상 쓰라고 하더군요. 한마디로 삶의 일대기를 쓰라는 것인데, 좀 더 멋있게 말하면 ‘주성하 동지의 회고록’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손으로 100페이지 쓰라고 하면 미쳤냐 하면서 제가 가능한 최고 능력치의 반항을 할 것이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북에서 배운 것을 그때 아주 요긴하게 써먹었습니다. 제가 북에서 공부만큼은 자신 있었던 사람인데, 공부할 때 모든 것을 손으로 필기했습니다. 대학 때 시험 기간이라도 되면 밤새 남의 학습장 한 권 베껴 쓰는 것은 일도 아니었죠. 100페이지 우습죠. 100페이지면 소설 하나 나올 분량인데, 그걸 이틀인가 다 써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의 저는 필사 능력치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능력을 동아일보 입사해서도 한 번 더 써먹었습니다. 수습 기간에 뭘 잘못했다고 오전 11시쯤에 지시하기를 밤 12시까지 반성문 50페이지를 손으로 써서 갖고 오랍니다. 12시간 만에 50페이지를 쓰라는 건데, 국정원 조사에선 일대기라도 쓸 것이 있지 이건 그냥 “내가 이거 잘못했던 것 같습니다. 다음에 잘하겠습니다” 이 몇 줄이면 될 일을 어떻게 50페이지나 반성하며 채웁니까.

그런데 이때 북한에서 맨날 생활총화하며 반성하고 호상 비판했던 암울한 과거가 도움이 됐습니다. 잘못이 없어도 잘못했다고 반성한다고 20년을 생활총화하며 살다보니 글쎄 제가 12시간 동안에 50페이지를 구구절절 반성문 볼펜으로 써서 가져갔다는 거 아닙니까. 생활총화 만든 김정일이 덕분에 그런 쓰잘데기 없는 능력이 생겼죠.

요새 언론사 수습들이 힘들다고 그러는데, “라때는 말이야. 너네 12시간 동안 손으로 반성문 50페이지 쓴 놈 있으면 나와 봐.” 지금은 제가 감으로만 느끼지만 그 능력이 쓸 데가 없어 퇴화된 것 같습니다. 잘 된 건지, 안 된 거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암튼 그렇게 써서 낸 것을 토대로 조사실로 매일 불러 추가로 캐묻고 나중에 거짓말 탐지기 조사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국정원도 일을 열심히 잘 안하는 것 같아요. 제가 그때 조사받으며 김일성대 외문학부 강좌장 이름이 뭐고 당비서 이름이 뭐고, 청년동맹 비서 이름이 뭐고 다 이야기했겠죠.

통일부에서 북한인명록이라고 매년 발행돼 나오는데 김일성대 외문학부 인명록에는 19년 전에 제가 말한 그 이름들이 여전히 올라있습니다. 아니, 그 사람들이 지금 있겠어요. 벌써 돌아가신 분들도 있는데 이 분들이 19년째 학부장이고 당비서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정부가 발행한 북한인명록 제가 믿겠습니까. 안 믿겠습니까. 개판입니다.

제가 인천공항에 들어올 때 누가 “간만에 쓸만한 사람 왔다”고 전화했던 것을 제가 엿들었다고 했죠. 저는 정말 쓸만한 사람인지 조사가 끝나고 롯데호텔에 가는 영광이 차례진 것입니다. 왜 갔냐. 추가 조사를 위해서 갔죠. 왜 거기 데려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성공사에 들어올 보안등급이 안되는 부서에게 제 증언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대성공사에서 조사 받아도 누구나에게 이렇게 외부 데려가 추가 조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화려한 잠실 롯데호텔에 입이 딱 벌어져서 따라가니 데리고 간 요원이 한 방 문 앞에 데려가 여기서 일보고 나오라 하고 자기는 나갑니다. 방에 딱 들어갔는데, 미모의 젊은 여성 두 명이 침대에 앉아 있다가 저를 맞아줍니다.

“여긴 어디이고, 이 여성들은 누구이고, 나는 왜 여기에 왔나”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면 간단해요. 추가 조사 때문에 간 거죠. 그때 거길 아지트처럼 썼는지, 아님 조용한 장소로 호텔방을 선정했는지 그런 거겠죠.

그 여인들은 서울에 와서 제가 처음 만나 대화를 했던 한국 여성이었습니다. 친절했고, 상냥했고, 피부도 뽀얗고, 예뻤고, 늘씬했고, 서울 말씨마저 간드러지게 죽여줘요.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니 발아래엔 롯데월드가 무릉도원처럼 펼쳐져 있어 경치도 끝내주고. 그야 말로 구름 위에 앉은 기분이었죠. 뭘 물어봤던 지도 하나도 기억이 안 납니다.

그런데 조사가 끝난 뒤에 던진 단 한마디에 기분이 싹 날아갔습니다. 조사 다 마치고 생글생글 웃으며 “어때요. 한국 누나 예쁘죠” 이러는 겁니다. 지금이라면 입 꼬리 살짝 올리면서 피식 웃어주면 될 일인데, 그때는 왜 그 말이 거슬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싸가지 없는…. 오빠 놀리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 예쁜 거 인정해요. 문제는 그 여성들이 저보다 몇 살 어려 보였다는 겁니다. 북한에서 온 저는 겉늙어 보였고, 또 북에서 그 정도 페이스면 다 20대 초반이나 될 겁니다. 저도 대답하면서 “어린 애들이 수고 많네” 이러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기가 누나래요.

“요것들이 내가 북에서 왔다고, 순진하고 순박한 것은 어떻게 알고 요렇게 놀리네” 이런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잡쳤죠. 그때는 “민증 까” 요런 말도 모를 때고, 민증 본 적도 없고요.

아무튼 누나란 이야기 들은 다음부터 이들이 보이는 친절은 다 놀리는 것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리고 “북한 남자의 자존심을 언제 어떻게 보여야 멋있을까” 이런 생각이 계속 머리에 떠올랐죠. 물론 나올 때까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예쁜 여성 앞에서 모질지 못한 것이 자고로 남자란 존재들이 갖는 약점 아닙니까.

나중에 예쁜 여성들 너무 많이 봐서, 그때 만난 여성들은 이젠 얼굴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들이 국정원 직원이었는지, 아님 산하 연구기관 직원들이었는지 전혀 모릅니다. 여전히 북한 분야에 종사한다면 이 유튜브 볼 지도 모르겠는데, 한 명이라도 봤으면 좋겠네요.

누나인지 제가 확인은 못했지만, 누나가 맞다면 이젠 손자도 봤을지도 모를 나이가 됐을 건데, 이걸 보면서 “야, 쟤가 그때 ‘누나 예쁘지’란 말에 엄청 충격 받았대”라며 까르르 웃어줘도 좋습니다.

그런데 그게 19년 전 이야기이고, 지금도 저는 여성들 보면 나이를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세월이 흐를수록 한국 여성들은 점점 젊어지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저는 젊은 여성을 보면 30대인지 20대인지 구분이 잘 안돼요. 저는 왜 마흔 넘은 여성도 아가씨처럼 보이는 거죠? 나이 듣고 충격 먹을 때가 많습니다. 이것이 교정이 필요한 병인지, 아니면 젊게 사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얘기 들을만 했다면 좋아요, 구독 눌러주시고 가시라요. 이틀 뒤에 다른 이야기로 또 찾아오겠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