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들이 만들어낸 거짓말-황해제철소 노동자 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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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09.06 11:10


오늘은 북한의 대표적인 인민항쟁이라고까지 추앙받는 ‘황해제철소 폭동사건’의 진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도 과거 여러 글을 보면서 황해북도 송림시에 위치한 황해제철소에서 노동자들이 북한 당국에 항의하다 탱크에 수십 명이 깔려죽은 사건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 사건은 부끄럽지만 탈북자 사회가 만들어낸 대표적 거짓말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는 사실을 다루는 기자이기 때문에 거짓말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제일 싫어합니다. 물론 북한을 100% 정확하게 안다는 것이 불가능하고 저부터도 오보가 있을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수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지어내는 것은 하늘땅 차이죠. 이건 양심과 정직을, 결과적으로 인격을 돈에 팔아먹었느냐 아니냐의 차이이죠.

탈북자 사회에 이런 말이 돕니다. 처음엔 중국에서 하나님 믿었다고 하니 교회에 와서 간증을 시켰는데, 조금 있다 보니 중국에서 자다가 하나님을 영접해 계시 정도 받아야 간증 불러주고, 그런데 좀 더 지나고 보니 북한 지하교회 신자 정도 했다고 해야 간증 불러주고, 나아가 지하교회 전도사 정도 해야 간증 불러준다는 말이 있죠.

아직 북한 지하교회 목사는 안나온 것 같은데, 좀 있으면 나올 것 같기도 합니다. 교회 간증비 얼마를 받겠다고 그러는 것도 문제지만, 같은 탈북자가 들으면 거짓말이 뻔한데도 신자들을 위한 서비스로 사기 치는 사람 불러 시키는 교회도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게 교회만 해당됩니까.

그동안 탈북자들의 과장된 증언으로 한국사회에 얼마나 많은 논란 만들어냈습니까. 오늘 말씀드릴 황해제철소 폭동도 2001년 모 월간지에 기고한 탈북민의 증언이 계속 확대 해석되면서 커진 것입니다. 이제부터 일명 송림사건의 진실에 대해 말씀 드릴텐데, 주성하TV는 구독, 좋아요도 좋지만 끝까지 들어주시면 더욱 힘을 얻습니다.

황해제철소가 송림시에 있기 때문에 이 사건은 황해제철소 폭동사건, 송림사건 등으로 불립니다. 이 사건이 어떻게 소개됐나면 1998년 8월 배고파서 제철소 압연철판을 간부들이 옥수수로 바꾸어 노동자들에게 배급을 주었는데, 보위사령부가 탱크를 몰고 들이닥쳐 간부들을 무리로 처형하고,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제철소 정문 앞에 모여 항의하자 탱크로 깔아 죽였다고 알려졌습니다.

간부들 처형하는 자리에서 김일성 간호사 하던 여성이 마이크를 쥐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하니 당장 그 자리에서 처형시켰다느니, 처형된 사람들을 평토장했는데 다음날 그 자리에 거대한 봉분들 생겨났고 그 위에 수백 개의 헌화가 놓여있었다느니 하는 그럴 듯한 자세한 상황까지 소개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면 위키백과에 송림제철소 학살 사건이라고도 나오니 찾아보십시오.

저는 아직 유튜브에서 황해제철소 사건을 다루지 않았는데, 바로 저 김일성 간호사와 헌화의 증언이 도저히 상식과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개처형장에서 판결문 읽는 사람의 마이크를 빼앗아 판결이 부당하다고 소리를 친다는 것은 제 상식엔 북한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사형수를 평토장했는데 그걸 다시 몰래 봉분으로 만들어 수백 개의 헌화를 한다는 것도 더 말이 되지 않는 얘기죠. 그랬다면 본인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의 목숨을 담보로 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행이 이제는 한국에 온 탈북자들도 많고 송림에서 간부를 하다 온 분들도 있고 해서 저는 당시 사건의 비교적 정확한 실체에 대해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파악한 사건 개요에 대해 이제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고난의 행군이 3년째 이어지던 1998년이 되니 북한의 기강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먹고 살기 어려워 사람들이 공장 자재 빼서 팔아먹고, 전선줄 잘라 팔아먹고, 심지어 철도 레일까지 빼서 고철로 팔았습니다.

사정이 이렇게 되니 김정일은 보위사령부에 임무를 줍니다. 총소리를 울려 사회 기강을 바로 잡으라고 말입니다.

보위사령부는 먼저 신의주와 혜산 등 중국으로 나가는 주요 밀무역 통로들부터 가서 검열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신의주에 가보니 유색금속은 물론 멀쩡한 철강재들까지 고철로 팔려나가는 겁니다. 이것이 어디서 오는지 쭉 추적해보니 북한의 양대 제철소로 꼽히는 황해제철소까지 이어졌습니다.

황해제철소가 있는 송림의 상황은 고난의 행군 때 말이 아니었습니다. 송림은 당시 인구가 13만 도시였는데, 완전한 공업도시라 전국적으로도 아사자가 제일 많이 나오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제철소 당위원회에선 결국 직장 자체로 먹여 살리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각 직장에서 부업을 했는데 철제일용직장 이런 데선 석유곤로나 불고기판을 만들어 팔아먹고 살았습니다. 어떤 곳에선 모터를 팔기도 하고요.

그런데 제철소의 핵심인 강철직장은 그냥 철을 팔아먹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사실 전기가 없어 철도 생산 못했습니다. 그래서 강철직장은 직장 바닥에 깔린 밑바닥인 소위 ‘깔판’을 떼서 팔았습니다. 제철소 바닥은 시멘트로 할 수가 없어 철을 타일처럼 만들어 깔았는데 그걸 떼서 판 것입니다.

신의주에 나갔던 보위사령부에서 중좌 한 명이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송림사건 일어나기 몇 달 전에 건너왔습니다. 신분을 속이고 철을 구입하는 거간꾼으로 가장했습니다.

당시 황해제철소에서 팔아먹는 것들은 송림시장 앞에 있는 과거 공기총 쏘는 사격장이 있던 자리에 있는, 일명 ‘해빛회사’로 불리는 거간시장에서 거래가 이뤄졌습니다. 해빛회사는 공식 명칭이 아니고 거간꾼들이 낮에 모인다고 현지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입니다.

이 보위사 중좌가 이곳에서 활동하면서 자료를 모았습니다. 깔판 사겠다고 하니 걸려든 사람이 성길이라는 이름의 제철소 선전대 대장이었습니다. 이 사람 집에 도청기를 설치해 연관자들까지 다 색출했습니다.

그리고 공포감을 주기 위해 1998년 8월 초 새벽 3시 인근 105탱크사단 소속 전차 20여대가 사리원에 진입했습니다. 탱크는 몇 대뿐이고 주로 장갑차들이었습니다. 그 다음 미리 조사해 찍어둔 사람들을 체포해 이중 11명을 처형했습니다.

처형자 중 가장 직책이 높은 사람은 송림시 안전부 부부장이었고, 이외 강철직장 보위지도원, 제철소 당위원회 선전선동부 부부장, 선전대 대장 성길 등이 처형됐습니다.

또 도 씨 성을 가진 송림에서 유명한 해결사도 처형됐는데, 그는 친척형제 중 11명이나 개성시 당위원회, 안전부에 있는 나름 북한의 핵심 계층입니다. 송림에서 그는 돈 받아주는 일을 했는데 현지 사람들 속에서 임꺽정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의리는 있었던 가 봅니다. 그 역시 철을 팔아먹고 밀가루를 사오는데 많이 개입했는데 그 때문에 죽었습니다.

이들에게 들씌워진 죄명은 반당반혁명종파분자, 간첩 등이었습니다. 처형은 송림시에서 제일 큰 철산광장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진행했고, 사형수들은 철산광장에서 바라 볼 때 꽃핀동에서 사포동으로 넘어가는 길 위에 쭉 세워두고 처형했습니다.

김일성의 간호사가 마이크 빼앗고 이런 일도 없었고, 다음날 노동자들이 공장 출구에 수천 명이 모여 시위한 사실도 전혀 없습니다. 물론 그 끔찍한 장면을 보고 불평들은 했지만, 그런 공포 분위기에서 누가 감히 탱크에 대듭니까.

송림에 왔던 전차 부대는 10여일 더 있다가 철수했습니다. 사회를 정화시킨다며 송림에 장갑차를 몰고 가 11명을 처형한 것이 송림 사건의 진짜 진실입니다. 제철소 노동자 폭동이었고, 탱크로 수 십 명을 깔아 죽였다는 것은 제가 취재한 결과 허구였습니다.

송림에 탱크부대가 들어갔다는 소문은 북한에 빠르게 퍼졌습니다. 저도 당시 들었습니다. 여론이 안 좋게 돌아가자 김정일이 이후 “총성이 너무 큽니다”고 했다고 합니다.

여담이지만, 이후 송림에서 이런 소문이 퍼졌습니다. “원래 사형수는 12명인데 1명이 눈치를 채고 도망갔다. 나중에 잡혔지만 김정일이 총소리 그만 내라고 해서 이 사람은 총살되진 않았다. 결국 먼저 도망치고 볼 판이다”라고 말입니다.

송림제철소 사건의 진실을 전하는 것은 탈북자 사회의 치부와 연관되기에 약간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저는 진실을 다루는 기자로써 가짜 정보가 유통되는 것은 보고 있을 수만 없어 오늘 주제로 다뤘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