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이 단결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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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09.10 17:14


지금 한국에 3만5000명이 좀 안되는 탈북민들이 정착했는데, 북에서 의거입북자 한 명이 왔다고 신문에 나고 난리치던 것에 비하면 정말 많은 사람이 남에 온 것입니다.

제가 한국에 쭉 살다보면 많이 받는 질문의 하나가 “탈북자들은 왜 단결하지 못하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탈북민 유튜브도 얼핏 봐도 100개는 넘는 것 같은데, 이들도 이런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탈북자들은 왜 뭉치지 못하는가”에 대해 주제로 다루려 합니다. 이건 탈북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제가 기자로 탈북민 사회를 거의 20년 가까이 지켜보면서 내린 결론이지만,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 의견임을 확실히 해둡니다.

저는 탈북민 사회가 뭉치기 어려운 이유가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더 세분화할 수 있지만 두 개만 기억해줘도 문제는 없기 때문에 크게 둘로 나눕니다.

그 두 가지는 첫째로 깃발이 없고, 두 번째로 이타적인 리더가 없다는 것입니다.

뭉치려면 깃발이 있어야 합니다. 그 깃발 밑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입니다. 깃발이란 우리가 어디로 가자고 약속한 공통의 뜻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탈북민 사회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죠. 누구는 이렇게 생각하고, 누구는 이렇게 생각하죠. 누구는 김정은과의 싸움이 우선이라 생각하고, 누구는 정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깃발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탈북민이라면 김정은 체제가 붕괴돼 고향으로 갈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누구보다 학수고대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공통의 염원이고 깃발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김정은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그때부터 방법이 달라집니다. 누구는 봉쇄하고 압박하자고 하고, 누구는 개성공단 10개 정도 만드는 것이 방법이라고 합니다. 이 방법을 통일시킬 묘안은 없습니다. 각자 자기의 경험과 학습에 의해 세운 견해이고, 자기 생각이 뚜렷한 것은 나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론은 깃발을 하나로 절대 만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이타적인 리더입니다. 깃발이 있어도 깃발을 들고 나갈 기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따르는 리더가 되려면 저는 이타적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탈북민 사회에도 각종 단체가 약 70여개가 존재하는데, 생계형 단체도 분명히 있겠죠. 단체를 만들어 리더가 된 사람이 단체를 생계형으로 삼으면 절대 깃발을 들 수 있는 리더가 될 수가 없습니다. 단체 만들어 사람들 가입시켜 그걸 내걸어 각종 지원과 후원을 받아 내 생활에 쓴다면 이기적인 단체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 것보다 네 것을 먼저 생각하고, 다 주는 사람이어야 대중이 따릅니다. 리더라면 이기심을 버리고 자기는 거지가 될 각오가 돼야 존경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아주 없는 것은 아니고 근접한 사람은 몇 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정말 인생의 매 순간이 뒤통수를 맞는 삶이더라고요. 그런 삶을 견디는 사람을 보면 존경은 하지만, 저는 그렇게 되기 싫습니다. 자기에게 남는 것은 없는데 십자가를 들고 나간다는 것은 누구에게 요구하기도 어렵습니다.

결국 통일된 깃발과 이타적 리더의 부재가 탈북민 사회를 뭉칠 수 없게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하는데, 이제부터 이에 대한 제 견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탈북민들이 왜 뭉쳐야 합니까. 뭉치지 않으면 뭐가 문제가 됩니까. 깃발이 다양하면 안 됩니까.

여기는 다양한 생각이 공존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입니다. 탈북민도 정치적 견해의 스펙트럼이 다양합니다. 가령 누가 태극기 집회에 열심히 참가할 때, 누구는 조국 수호 집회에 참가합니다. 누가 파주에 가서 삐라를 뿌릴 때 또 누구는 후원금 받으려 쇼를 한다고 비난합니다. 다 탈북민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죠.

그런데 저는 이걸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고 서로 견제하면서 사회가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탈북민들이 뭉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탈북민도 꽤 있습니다. 대개 나이가 드신 분들이 “왜 탈북민들이 뭉치지 못하냐”고 한탄하면서 그런 주장을 합니다.

한탄만 하면 다행이고, 자기의 생각에 맞추지 않는다고 요즘 젊은 것들이 큰일이라고 욕을 하고, 따돌림을 주고 돌을 던집니다. 탈북민 사회에서 “나는 민주당 지지자”라고 하면 온갖 비난과 욕설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이 북한에서 세뇌된 영향이라고 봅니다. 북한은 늘 적을 내걸고 투쟁을 한다며 70년을 주민들을 통치했습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 자체가 타도하는 이념이고, 미제와 싸워야 하는데 딴 생각 품는 자들은 적이라며 종파로 몰아 숙청하고, 김 씨 일가에 의문을 품으면 또 반당반혁명분자로 숙청하면서 끊임없이 내부 투쟁을 동력으로 삼아 투쟁해 왔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오래 살다보면 적이 없으면 불안해집니다. 저도 모르게 뇌가 세뇌를 당한 것입니다. 적이 없는 사회에서 살아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대개 나이가 많이 들어오면 한국에서 또 다른 적을 만들더라고요.

당연히 김정은은 가장 증오하는 적입니다. 그건 다들 공통일 것이니 문제가 될 것은 없는데, 문제는 김정은에게 가서 주먹을 휘두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뭔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보이는 적이 더 필요합니다. 그래야 내가 치열하게 투쟁하는 것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정은에게 유화적인 정책을 펴는 정권이 적이 되고, 그에 추종하는 인물들이 적이 되며, 특히 탈북민 사회에서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면 완전 변절자가 되는 겁니다. 물론 이념에 따라 반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탈북민을 성향이 다르고, 제일 만만해 보이니 공격대상으로 삼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해관계를 둘러싼 싸움도 많이 나긴 하죠.

그런데 이건 탈북민 사회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한국도 북괴를 적으로 둔 세상에서 오래 살았죠. 때려잡자 공산당 사회에서 오랫동안 산 분들이 나이가 들면 어떤 투사로 변하는 지는 제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북에서 한자리 하고 나이가 들어 온 분들이, 이제는 나이가 들어 사람들이 별로 찾아도 주지 않는 분들이 나이가 어린 탈북민에게 “네가 뭘 아냐. 너의 사상에 문제가 있다. 너는 배신자다”는 이유로 온갖 인신공격을 하면서 상욕을 하는 것을 적지 않게 봤습니다.

나이 들어 그게 인생의 낙이면 그렇게 사는 것도 또한 자유입니다. 그의 머리는 인생을 끝까지 투쟁하며 사는 것이 곧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고 세팅이 돼 있을 겁니다. 이건 이젠 누구도 바꿀 수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끝으로 탈북민들은 이걸 알아야 합니다. 얼핏 생각하면 어떤 사회에 소수로 존재하면 그 소수는 생존을 위해 똘똘 뭉칠 것 같죠. 그런데 아닌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탈북민만 뭉치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한국 사람들도 똑같습니다. 가령 몇 년 전에 뉴욕 한인회장 놓고 치고받고 싸워서 뉴욕타임스까지 소개됐죠. 워싱턴 한인회, 베이징 한인회 어딜 가봐야 늘 싸웁니다. 외국 나가서 한국인들도 뭉치지 못합니다.

그러니 한국에 온 탈북민들이 뭉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게 탈북민들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왜 이리 싸움을 좋아할까요. 통일된 깃발도 없고, 이타적 리더도 없는 한 결국 계속 싸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니 탈북민들이 뭉치지 못하는 것이 탈북민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탈북자들은 단결하라”는 구호를 외치는 분이 있다면 이런 질문을 하십시오. “뭉쳐서 뭘 할 건데요? 뭉치면 누가 리더가 될 건데요? 내가 당신 아래에 뭉치면 당신은 육신과 재산을 다 바쳐 앞장설 수 있나요?”라고 말입니다.

저는 뭉치지 않는 것이 정상이라고 봅니다. 사상적 단결을 부르짖는 북한에서 이를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 어떤 폭력을 휘둘렀는지, 통일된 사상을 강요하며 어떤 억압이 자행됐는지 똑똑히 본 사람이라면, 단결이란 말속에 숨은 폭력성에 치를 떨어야 한다고 봅니다. 다양한 생각이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바로 한국이 이렇게 발전된 것입니다. 이상 탈북민들은 왜 뭉치지 못하냐에 대한 저의 견해를 말씀드렸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