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괴뢰말투와의 전쟁`. 오빠라 불러도 잡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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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09.22 16:47


이달 2일 ‘조선의 오늘’이라는 북한의 해외선전용 인터넷 사이트가 김정은이 과거 범법 행위로 처벌을 받은 청년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했다고 홍보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매체에 따르면 김정은이 지난달 30일 탄광이나 건설장 같은 험지에 자원해 새 출발을 한 '뒤떨어졌던 청년들‘ 9명을 만나 “어렵고 힘든 부문에 탄원 진출해 인생의 새 출발을 한 것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대견하게 여긴다”며 격려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조선의 오늘은 “지난날의 과오를 깨끗하고 성실한 땀으로 씻으려는 자그마한 양심의 싹도 소중히 여기고 모두를 안아 내세워주시는 분”이라고 김정은을 치켜세웠습니다.

저는 그걸 보면서 참으로 웃겼습니다. 이번 방송을 통해 최근 김정은이 심지어 ’동생‘이란 말도 쓰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을 단독으로 전하면서, 북한에서 어떤 코미디가 일어나고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자, 어디 한번 김정은이 만났다는 과거에는 뒤떨어졌지만, 탄광과 건설장에서 만나 새 출발을 한다는 청년들을 볼까요.

제 뒤에 보이는 사진입니다. 악수하는 사진인데 김정은과 악수하는 청년이나 그 옆에 있는 키 큰 청년의 눈매가 범상치는 않습니다.

다음 사진을 보면 김정은이 뒤떨어졌다는 청년들을 격려하고 찍었다는 단체 사진이 나옵니다. 저는 이 사진을 딱 보고 세 명이 눈에 딱 들어왔는데 우선 오른쪽 세 번째 청년 보십시오. 범상치 않은 눈매, 고집스러운 입술 등을 통해 풍채와 카리스마가 딱 있어 보입니다.

다른 청년들은 김정은 옆이라 다리를 딱 모으고 두 발을 팔자로 살짝 벌여 차렷 자세로 찍었는데, 이 청년만은 김정은보다 더 발을 쩍 벌이고, 심지어 옆에 있는 두 청년과 팔을 낀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만 보면 무슨 청년동맹 간부 같은데, 김정은이 뒤떨어졌다는 청년 9명을 만났다고 했으니 이 청년도 분명 뒤떨어진 청년이 확실해 보입니다. 이 방송을 보시는 여성분들이 선보러 가서 저 청년과 김정은 중 한 명을 고르라고 하면 누굴 고를까요. 딱 보면 견적이 나옵니다.

네 번째 청년은 군복 비슷한 것을 입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속도전청년돌격대 군복입니다. 체격이 좋은 중학교 졸업생부터 특수부대 뽑아가고, 고르고 고르다 체격이 나쁜 청년들이 군대 대신 건설현장에 나가 군인과 똑같은 규율을 적용받으며 건설 노동자로 사는 겁니다.

그리고 제일 왼쪽 끝에 선 청년은 키가 190㎝ 가까이 돼 보이는데, 운동선수 삘이 납니다. 아마 이 청년의 뒤떨어진 행위의 죄명은 주먹질이 아니겠는가 생각됩니다.

이들 청년들이 지은 죄란 무엇일까요. 살인, 성범죄 등 중대범죄자는 이미 감옥에서 썩고 있을 것이고, 아마 기껏 중대한 범죄라고 해봐야 도둑질하다 걸린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체격이 허약하고, 깡마른 친구들은 집안도 잘 살아 보이지 않는데, 생활고 때문에 이뤄진 범죄를 저질렀다고 개인적으로 추정해 보입니다. 그리고 건달 깡패 하던 친구도 있겠죠. 오른쪽 제일 끝에 있는 키가 큰 청년처럼 말입니다.

오른쪽과 왼쪽 세 번째 청년은 때깔을 보면 어려운 집 자식 같지 않은데, 무슨 죄일까요. 저는 이들은 외국 영상매체를 보다 걸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북한에선 이런 것이 매우 중요한 범죄가 됩니다.

그런데 전 세계 기준에서 이게 왜 범죄입니까. 북한이 탈레반보다 더 기가 막힌 법을 내놓지 않았다면 무고한 청년들이 범죄자가 됐을까요.

자, 이 사진을 찍기 이틀 전인 8월 28일이 북한의 청년절입니다. 이날을 맞아 북한은 전국에 방침 포치라는 것을 했습니다. 방침포치란 김정은의 지시를 하달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 내용을 제가 단독으로 입수했습니다.

여러 내용이 있는데, 제일 기가 막힌 것은 이 대목입니다. “괴뢰 문화의 졸렬성, 부패성을 똑바로 인식시키기 위한 사상교양사업을 짜고들 것. 청년들 속에서 친인척관계가 없는데도 ‘오빠’ ‘동생’이라는 괴뢰말투를 쓰면서 불건전한 사상을 유포시키는 행위를 근절하도록 할 것.” 정말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김정은이 지난해 말에 한국 말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오빠야’라는 말을 괴뢰 말투로 단정해 걸리면 처벌받는다는 내용은 주성하TV가 최초로 보도했죠. 모든 언론 매체 중에 최초로 보도한 것이고, 실제 이후 북한의 매체 등을 통해 괴뢰말투와의 전쟁이 벌어진 것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란 단어까지 괴뢰말투라고 단정하고 처벌한다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오빠, 동생이 왜 괴뢰말투입니까. 물론 친인척끼리 부르면 괜찮은데, 혈족이 아닌 사람을 오빠, 동생이라고 하면 이게 괴뢰말투가 되는 겁니다.

오빠하고 부르는 거 우린 자연스러우니 뭔 상황에서 부르는지 알겠죠. 그리고 영희 동생, 철수 동생 하면 이거 괴뢰말투랍니다.

겨레말큰사전 만든다는 사람들 이 방송 다 보길 바랍니다. 이런 놈들과 무슨 겨레말사전을 만든다며 한 해에 수십억의 예산을 쓰고 있습니까. 어이가 없습니다.

앞으로 북한에서 오빠, 동생 하다가 걸리면 범법자가 돼 불미스러운 과거를 가진 뒤떨어진 청년이 되는 겁니다. 말하고 보니 어이가 없지 않습니까.

한국 드라마 보는 청년들은 뒤떨어진 것이 아니라 유행에 제일 앞장서는 청년이죠. 그걸 막는 김정은이 북한에서 제일 뒤떨어진 인간이죠. 이렇게 북한에선 앞서다와 뒤떨어지다의 뜻도 우리와 반대로 해석이 됩니다. 기가 막힌 현실입니다.

청년절 지침에 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에 대하여 ‘회고’라는 말을 쓰지 말 것, 이렇게 됐는데, 이건 아마 ‘회고모임’, ‘회고음악회’ 이런 것을 쓰지 말라는 뜻 같습니다. 그럼 어떤 표현을 써야 할까요. 선전선동부 아첨꾼들이 다 알아서 만들 것이니 좀 지켜보면 알게 되겠죠.

다음에 ‘친인민적’ ‘친현실적’이라는 표현을 망탕 쓰지 말라는 대목도 있습니다. 왜 쓰지 말라는지 나옵니다. 이런 표현은 당 사업을 “인민대중의 요구와 지향에 맞게 주동적으로, 현실적으로 하라는 것이지 현실을 고려한다고 하면서 구걸하는 식으로 하라는 것이 아니다”는 겁니다. 참 모순된 말이죠. 구걸하는 식으로 하지 말라는 것은 강제로 시키라는 소리인데, 그렇게 시키는 것이 친인민적, 친현실적 사업이라는 뜻일까요. 아무튼 말인지 꽈배기인지 참 모호합니다.

기타 방침을 보면 뻔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9.9절을 뜻 깊게 경축하도록 할 것. 로작, 덕성실기, 회상실기 학습, 도록학습, 영화문헌학습 진행하며 방역규칙 지키면서 체육경기도 잘 조직할 것. 위대성교양, 계급교양 잘 진행할 것’ 이러루한 것들이 있습니다.

끝으로 웃긴 일이 또 있습니다. 조선의 오늘은 김정은이 만난 청년들의 모습을 1998년에 제작된 영화 ‘줄기는 뿌리에서 자란다’의 주인공 류승남에 빗대 소개했습니다. 이 영화 줄거리는 깡패 대장이던 류승남이란 청년이 자기 조직원들을 데리고 안주탄광에 가서 열심히 일해 노력영웅이 된다는 내용인데, 불량 청년이 과거를 반성하고 노동으로 새 인생을 일군다는 그런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런데 제가 예전에 북한에서 상영 금지된 영화 목록을 공개한 적이 있죠. 줄기는 뿌리에서 자란다는 ‘장성택 역적의 여독청산과 관련하여 회수해야 할 전자다매체 목록’과 ‘역적들과 그 관련자들의 낯짝이 비춰지는 영화’ 목록에 동시에 올라있습니다. 이유는 여주인공인 김혜경이 처형됐기 때문으로 알려졌는데, 북에서 김혜경은 장성택의 정부였고, 애까지 있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금지시킨 사유를 보니 맞는 것 같습니다.

‘줄기는 뿌리에서 자란다’는 영화를 자기들이 아주 반동 영화로 만들어 보지 말라고 해놓고, 이번에 와서 또 그 영화의 남주인공을 빗대 모범적으로 살라고 하니 참 웃음이 나옵니다.
북한 선전일꾼들도 참 머리가 아프겠습니다.

나중에 북에 가는 분들이 있으면 기억해두십시오. 평양 가서 “오빠‘ ’동생‘하다가 괴뢰말투 쓴다고 핀잔 당할지 모릅니다. 지금처럼 시대를 거꾸로 가는 정책을 펴는 김정은을 뭐라고 해야 하나요. 북한의 탈레김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늘 방송 여기서 마칩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