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을러진 김정은, 아버지 따라배우기 쇼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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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09.29 15:38


니라, 6.25전쟁 때 대학생들로 꾸려 활약했던 정치공작대에 입대해 정치군관이 됐겠죠.

아무튼 교도 생활이 막 시작됐는데 얼마 안돼 갑자기 우리 중대를 소집해 작업을 보내는 겁니다. 제가 있던 부대가 평양 만경대구역에서 남포 쪽으로 쭉 나가는 길 옆 평양고사포병사령부 122여단인데, 대대와 중대 명칭은 생략하겠습니다. 대평술이라고 북한에서 유명한 술이 있는데, 그 술공장 근처에 우리 중대가 있었습니다.

작업에 나가보니 이웃 대대 진지에 가서 공사를 하는 겁니다. 그 대대는 57미리 쌍신 고사포를 갖고 있는 현역 남성중대였는데, 대학생 교도들도 오고 인근 군인들도 많이 왔습니다.
가서 진입도로부터 북에서 석비레로 포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석비레란 바윗돌이 풍화하여 푸석푸석하게 된 흙을 말하는데, 이걸 일명 마사토라고도 하는 가 봅니다. 평양고사포병사령부 예하 부대 진지는 다 이 석비례로 도로도 깔고, 포진지 주변 포장도 하고, 진지 포장도 다 합니다.

콘크리트로 하면 좋긴 하지만, 이게 전쟁 때 폭탄이 떨어지면 콘크리트는 깨져서 파편이 되는데 석비레는 파편이 그냥 박혀서 그렇게 한답니다.

가서 우린 불평이 많았죠. 아니, 자기 진지는 자기가 하면 되지 왜 우리까지 동원시키지. 얘네들은 뭐냐 이렇게 불만을 가졌는데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 중대 대원들도 왜 이렇게 떼거지로 몰려와서 우리 중대 포진지, 병실을 깔끔하게 만들어주는지 모르더군요.

그리고 인근 산을 헤매며 작은 소나무를 뿌리 채 뽑아다 그 진지 주변에 심었습니다. 김정일 시찰 때 배경이 된 다박솔 중엔 우리가 심은 것도 많습니다. 숱한 군인들이 달라 붙어 한 개 중대 진지를 완전 멋있는 휴양지처럼 만들었죠. 우리가 철수한 뒤에도 김정일이 바로 온 것이 아니라 설날에 나타났습니다.

그때 우리는 알았죠. 아, 김정일이 오니 저렇게 극비리에 공사한 것이구나. 김정일이 와서 다박솔이 많이 우거졌다고 해서 다박솔초소라고 이름을 붙이고 갔답니다. 그런데 하필 나무들이 많은데 왜 다박솔만 산에 가서 뽑아 거기에 심으라고 했을까요. 이미 김정일 오기 전부터 북한 선전당국이 그 초소 이름을 다박솔초소로 붙이려고 몇 달 전부터 다 기획을 한 것입니다. 북한이 이렇게 치밀합니다.

개굴 같던 병실도 멀끔하게 만드니 김정일이 만족해하고 갔다는데, 거기만 그렇게 멋있게 했지 다른 중대는 다 개굴이 맞았거든요. 이후 김정일이 방문한 부대를 보면 몇 달 동안 아주 치밀하게 세팅한 흔적이 역력히 보이는 부대들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딱 보이는 겁니다.

나중엔 한술 더 떠서 영양실조 환자가 있으면 대원들도 바꿔치기 했습니다. 체격 좋고, 영양상태 좋은 군인들만 뽑아서 김정일이 가면 그 부대 대원인척 속이는 것이죠. 그뿐입니까. 김정일이 온다고 하면 군단 창고 몽땅 털어서 식량 창고에 쌀을 쌓아두고, 고기를 쌓아두고, 냉동된 생선도 채워 넣습니다. 고난의 행군 때 군인 중에 영양실조 환자들도 엄청 많았는데, 김정일이 가는 곳마다 부대 창고는 완전 육류로 넘치고, 부대 대원들은 체격이 좋습니다.

제가 그걸 다 아니까 김정일이 방문할 때마다 몇 달 동안 준비된 쇼를 하는 게 너무 잘 보여서 그때는 “아니 김정일은 진짜로 저걸 믿는 거냐, 아님 믿는 척 하는거냐. 바보 아니냐”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김정일이 그게 쇼인걸 왜 모르겠습니까. 알면서 모르는 척 한 겁니다. 아마 자기가 지시해 시켰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고난의 행군 때 사람들이 굶어죽으니 김정일은 호화 별장에서 마냥 앉아 놀 수는 없었죠. 어느 별장에서 실컷 놀다가 바깥바람 좀 쏘이고 싶으면 주기적으로 인근에 준비한 세트장에 나타나는 겁니다.

이걸 통해서 주민들에겐 김정일은 쪽잠에 줴기밥을 먹으며 불철주야로 전국을 누빈다는 선전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선군정치를 하면서 군인들을 특별히 챙긴다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그럴 듯하게 준비된 부대 세트장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불시에 어느 부대 가려고 마음먹으면 왜 못하겠습니까. 그런데 가봐야 눈이 딱 감기고 답이 없죠. 자기가 할 말이 없으니 세트장에 가서 만족한 것처럼 배우 생활을 하는 겁니다. 하긴 민간 분야 돌아봐야 공장, 기업소 다 스톱됐으니 쉽게 꾸릴 수 있는 군 병실이 오히려 편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연극을 10년 넘게 했고, 인민들을 세뇌시켜 장군님이 고난의 행군을 함께 한다 이런 선전을 했던 것입니다. 치가 떨리는 일입니다.

그랬는데 김정은이 집권한 뒤 첫해 첫 군부대 방문 보고 제가 “오, 김정은은 아비와 좀 다르네”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김정은은 2012년 8월 쪽배를 타고 연평도 맞은 편 무도방어대를 찾았습니다. 연평도 포격전 때 연평도 해병대의 포사격으로 병실이 무너지는 등 피해를 입은 부대죠.

그런데 김정은과 병사들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보니 영양실조 환자들이 보였습니다. 병사 바꿔치기가 없었던 것이죠. 무도와 같은 요즘 북한군 전방부대는 물자공급이 제일 잘 되지 않아 가난한 노동자 농민의 자녀들이 갑니다. 먹지 못하니 피골이 상접하죠. 그런 병사들을 김정은이 직접 보고 사진 찍었다는 것이 어딥니까.

이후 김정은은 여기저기 부대들을 방문해 사진을 찍었는데, 들어보니 내가 갔을 때 지휘관들이 쇼를 한 것이 아니냐 의심이 들면 얼마 뒤 같은 부대 또 예고 없이 갔답니다. 자기가 온다고 특별히 군단 차원에서 준비했으면 혼을 냈고요.

그래서 김정은은 좀 다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몇 년 그러고 다니며 병사들 속에 파묻혀서 사진도 찍고 그러더니 이젠 자기도 알아버렸습니다. 아무리 가서 뭐라 혼내도 결국 답이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휘관 질책해 뭐합니까. 최고사령관인 자기가 정치를 잘못해서 나라와 군이 개판이 된 것이죠.

그래서 이젠 아예 안가기로 작정한 것 같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김정은이 군부대 방문해 병사들을 챙기는 걸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쇼라도 했는데 김정은은 이젠 쇼도 안할 생각인 듯 합니다. 만사 귀찮고 답이 없는 현실에 짜증도 나겠죠.

그런데 김정은은 명색이 지도자입니다. 거긴 도망치거나 기피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아무리 막막해도 현실과 마주쳐 풀어나갈 생각을 해야지 아예 현실조차 보기 싫어하면 북한이 어떻게 됩니까. 그럴거면 그 자리 내려와서 서울 와서 짜장면 배달이나 해. 오늘 방송 여기서 마칩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