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성지 대성산혁명열사릉 밑에서 벌인 불고기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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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12.08 17:14


저번 시간에 제가 개천비행장 화재로 인한 참극을 말씀드리다보니, 저도 한번 불 때문에 죽을 뻔했던 기억이 나서 그걸 이야기해 드리려 합니다. 어쩌면 저는 대학 1학년 때 가을에 불 때문에 죽을 수도 있었는데, 운 좋게 살아났습니다. 그냥 개인사를 말씀드리는 것이니 재미삼아 들어주십시오.

1990년대 초반 제가 대학 1학년 입학하자마자 있었던 일입니다. 9월 1일부터 김일성대에 입학해 불과 일주일 남짓 지나니 9월 9일 공화국 창건일이 됐습니다. 이날은 공휴일이라 다 쉬는데, 전국에서 와서 새로 얼굴을 익히며 같은 학년 기숙사생이 된 학생들이 모여 이야기하다가 9월 9일에 친목도 다질 겸 야유회를 가자고 이야기가 됐습니다.

예전에 말씀드렸지만, 솔직히 그때 우리는 기가 팍 죽어 있었습니다. 부푼 가슴을 안고 대학에 입학했는데, 입학하자마자 새벽부터 새벽까지 각종 기합과 욕설을 들으며 청소하는 게 일상이 됐습니다. 이건 뭐 청소하려 왔는지 공부하려 왔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죠. 그때 제 나이가 고작 만 17살이었고, 다른 친구들도 비슷했습니다. 더구나 우린 서로 친해질 틈도 없었죠.

그래도 역시 신입생이긴 하지만, 나이가 좀 더 들었다고 기숙사에 같이 생활하던 10살 많은 제대군인이 제안을 하더군요. 이번 9.9절에 우리 야유회 가자는 겁니다. 우리야 별로 갈 데도 없던 참에 좋습니다고 호응했습니다. 북한에서 야유회 가면 놀려 가는 것보단 먹으려 가는 목적이 더 크죠. 쫄쫄 굶다가 어쩌다 모여서 좋은 음식 먹으면서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노는 겁니다.

먹는 것 중에 으뜸은 고기를 가져가서 불고기 해먹는 것입니다. 북한에 뭐 소고기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보통 돼지고기 갖고 가는데, 삼겹살이니 목살이니 이런 부위 가릴 형편도 아니니 그냥 고기만 다 오케이입니다. 물론 한 10년 전부터 한국에 탈북자들이 많이 와서 그런지, 아님 평양에 간 한국 사람들이 알려줘서 그런지 이젠 삼겹살 아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일성대는 술 담배 하는 것이 들키면 퇴학입니다. 규정이 그렇다는 말인데, 담배 피우다 걸리면 규찰대에게 담배 한 막대기를 뇌물로 고이지 않으면 적발된 명단이 대학 당위원회 올라갑니다. 그럼 골치가 아프죠. 대학 전체가 모여 분기마다 열리는 비판무대에 올라서서 자아반성해야 하고, 힘이 없으면 본보기로 퇴학될 수가 있는 겁니다.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저는 술 담배 다 했습니다. 담배는 저녁이면 대학 구내에서 15분 정도 걸어가서 피웠는데 거기까지 대학 규찰대가 돌아다닙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서 딱 피우고 싶은데 언제 15분 걸어갑니까. 못 피우죠. 그런데 상급반은 다릅니다. 화장실 들어가서 1분도 안되는 사이에 한 대 피우고 달아납니다. 그럼 또 다른 상급생이 들어가 피우고 달아나는데, 그러다보면 화장실 주변에 연기가 뽀얗게 납니다.

규찰대도 자기들이 바쁘니까 아침에는 잘 안 오는데 혹시 왔다 이러면 하필 그 타이밍에 들어가 피우던 놈이 걸리는 겁니다. 이것도 하급생은 못합니다. 피우고 나오다가 상급생이 밖에 기다리는데 걸리면 그냥 끝장나죠.

누구 생일이 되면 이건 또 술을 마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럼 호실 밖을 다른 사람 시켜 좌물쇠 채우게 합니다. 그리고 출입문과 창문을 어두운 담요로 꽁꽁 막아 차단합니다. 그 안에서 외부 인기척 신경 쓰면서 술 마시고 담배를 피우죠. 이건 구내에서 그런 것이고, 밖에 나가면 자유롭지 않습니까. 남들 다 노는 명절이야 규찰대도 없고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돈을 걷어서 장마당에 나가 돼지고기를 사왔습니다. 술도 사오고 해서 어딜 갔냐. 대성산에 갔습니다. 김일성대 기숙사 바로 앞에 있는 삼흥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 역전만 가면 대성산이었습니다. 대성산이면 북한에선 혁명열사릉이 있는 아주 경건한 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 산줄기를 타고 열사릉이 있고, 열사릉 오른쪽에 유원지도 있고 해서 사람들이 바글바글합니다.

대성산 혁명렬사릉에 가면 주석궁도 한 눈에 보입니다. 김일성이 전우들을 기억하기 위해 대성산에 묘를 쓰게 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는 유원지 가려 간 것이 아니죠. 고기 굽고 술 먹으러 갔으니 유원지가 있는 오른쪽이 아닌 왼쪽으로 올라갔습니다. 거긴 길도 없고, 산골짜기에 작은 강이 흐르고 오솔길 같은 것이 나 있더군요. 그냥 무턱대고 올라갔습니다.

중턱쯤 올라가니 사람도 없고 좋습니다. 그래서 거기 평지 잡아서 소나무 잎사귀가 떨어진 걸 훌훌 밀어내고 나무 모아다 불을 피웠죠. 고기도 굽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그랬는데, 하필 그날이 저기압이라 연기가 위로 가지 않고 나무 사이로 쫙 깔려 가는 겁니다. 우린 불이 잘 붙지 않고 연기를 마신다고 싫어했습니다. 술 먹고 취해서 노래 부르고 그렇게 놀다가 3시간쯤 있다가 내려왔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한 1년쯤 지나서 드는 생각이 우리가 정말 도깨비라 총살될 일을 저질렀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성스러운 혁명열사릉이 있는 산에, 그것도 김일성 주석궁이 바로 앞에 보이는 산에서 불을 피웠다? 이건 처형감입니다. 수용소라고 끌려갈 판이죠. 산불이라도 났으면 거기 간 동창들 사돈에 팔촌까지 멸족됐을 겁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날 저기압이라 연기가 위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살았던 것입니다.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면 대성산에 산불이 났다고 소방차가 출동하고 경찰이 출동하고 호위사령부가 출동하고 대난리가 났을 겁니다.

그런데 정작 혁명렬사릉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골짜기에서 고기 구워먹은 우리는 지금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 행위를 하고 있는지 전혀 생각하는 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김일성대 학생들인데 말입니다. 한 열 명이 갔는데, 다들 좋기만 했지요. 지방놈들이라 평양 가서 어떻게 몸 처신을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던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한 1년 지나니까 “천운이 도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고, 열 명 중에 이걸 보위부에 가선 자수하는 놈은 없겠지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오싹합니다. 만약 연기가 좀 올라와서 우리가 걸렸다면 지금 제가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에게 유튜브를 하고 있겠습니까. 아마 처형되거나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갔을 거라 생각합니다. 대성산은 다른 산과는 달리 백두산 다음으로 아마 성스러운 산으로 치지 않을까 싶은데, 거기에 불내고 고기 구워먹었으니 말입니다. 저도 이후에 산불, 집에서 난 불 다 끄려 다니면서 불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됐지만, 대성산은 담배만 피워도 변명의 여지없이 반동으로 몰릴 수 있는 산입니다.

만약에 정말 그때 바람이 불어 산불이 나서 북한이 그렇게 돈을 많이 써서 만든 대성산혁명렬사릉이 불탔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물론 멸족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북한 역사에 이름은 나지 않았을까요. 옛날에 김일성대 학생이란 놈들이 대성산에 불을 내서 수령님이 애써 만들어놓으신 혁명렬사릉이 불바다가 됐다고 반동의 상징처럼 말입니다. 아마 정말 불이 났다면 김일성이 그걸 올려다보다가 그때 심근경색에 걸려 몇 년 일찍 죽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도 이렇게 도깨비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고기를 구워먹었던 친구들은 지금은 북한에서 간부로 잘 나가고 있을 겁니다. 아마 그들도 지금쯤 그때를 떠올리며 오싹한 기분을 느낄 것입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