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에 가족과 생이별하고 탈북하는 북한 화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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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12.29 18:32

얼마 전에 제가 제주도에 갔는데, 저녁 식사한다고 간 곳이 중국집이었습니다. 제주도에 와서 뜬금없이 중국집이라니, 의아해 하면서 갔는데, 가보니 맛은 있었습니다.

그 집은 할아버지가 1950년대 산둥반도에서 배를 타고 고기잡이 나왔는데 표류해서 제주도까지 오게 됐고, 이후 제주도에서 중국식당을 차렸는데 지금 3대째 식당 운영하고 있습니다. 손자인 현재 사장님은 미국에서 MBA 과정까지 마치고 왔다고 하네요. 그걸 보면서 이렇게 한국에선 화교라고 해도 얼마든지 성공해 잘 될 수 있는데, 북한에선 화교로 참 살기 어렵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선 북한 화교에 대해 잘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2013년 ‘탈북 화교 간첩사건’이 발표되면서 북한 화교가 잠깐 화제가 됐습니다. 올해 당사자인 유우성 씨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가 됐는데, 쉽게 말하면 간첩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화교임에도 탈북민으로 신분을 속인 혐의는 인정돼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그럼 북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왜 화교는 탈북민으로 인정해주지 않을까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은 북한 화교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요즘 북한에서 화교가 씨가 마르게 됐다는 내용 단독으로 전해드리겠습니다.

한국에 화교가 있듯이 북한에도 화교가 있습니다. 20년 전 자료에 따르면 해방 직후 북한에는 8만 명의 화교가 남았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내전이 종식되고 한반도에선 전쟁이 터지면서 1958년경에 남은 화교는 1만4000여명이 됐습니다.

이후 중국이 개혁개방을 해 잘 살게 되면서 고향에 돌아가는 화교가 많아지면서 2001년엔 6000명 정도가 남았습니다. 절반 이상이 평양에 살고, 평북, 자강도, 함경남북도에 각각 300세대 정도씩 살았습니다. 이게 20년 전 이야기이니 지금은 한 3000명 정도만 남아도 많이 있는 숫자일 겁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화교는 배우자가 북한 국적이고, 자녀도 북한 국적이라 떠날 수 없는 사람이 대다수입니다.

화교들은 중국 신분이기 때문에 중국에 자유롭게 다니고, 북한 내에서도 화교 학교를 다녀서 따로 공부합니다. 그런데 북한 법을 위반하면 보위부나 안전부에 끌려가 취조당하기도 합니다. 유우성 씨의 경우 북한 공민이 아닌 중국 공민이기 때문에 탈북민으로 인정받을 수가 없는 겁니다. 중국 사람이 탈북민이라고 하면 안 되죠.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화교는 잘 살지 못했습니다. 이때엔 일본에서 온 귀국자들이 제일 잘 살았죠. 하지만 개혁개방이 돼 중국의 친척들이 잘 살게 되고, 중국을 오가며 물건을 가지고 오면서부터 중국 화교들도 부자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에서 화교는 북한 주민들을 데려다 몰래 가정부로 부려먹을 정도로 부자들이 많습니다.

2000년쯤 되니 일본 출신의 귀국자들이 급속히 가난해졌습니다. 일본에 남은 가까운 직계 친인척들이 사망해 돈을 보내주지 못한데다 납치자 문제로 2006년부터 만경봉호가 일본을 오가지 못하면서 일본 친척들이 오지도 못하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화교가 북한에서 제일 잘 사는 계층이 됐죠.

그런데 이 화교들이 최근 급속히 거지가 되고 있습니다. 심각한 상황입니다. 왜 그러냐. 작년 초부터 북한이 코로나를 내걸고 국경을 봉쇄했기 때문입니다. 화교들은 중국을 오가며 장사를 해야 돈을 버는데 지금까지 거의 2년 동안 장사를 못하니 꼼짝없이 있는 돈으로 살아야 하는 겁니다.

장사하다가 돈을 중국에 보낸 상태라면 완전 굶어죽을 판입니다. 돈도 오갈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북에 친척들이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평소 인심을 좋게 써서 이웃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우도 거의 없으니 진퇴양난인 겁니다.

급기야 화교가 북한 내에서 식량난으로 굶어죽고 있다는 소식까지 흘러나옵니다. 이렇게 되니 화교가 북한 정부에 “우릴 좀 중국에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북한도 화교들이 앉아서 굶어죽으면 중국 정부와 문제가 되니 허용했습니다.

이렇게 돼서 올해 7월 북중 국경이 잠깐 열렸는데 이때 수 백 명의 화교가 중국에 나왔다고 합니다. 중국은 이때 체포한 중요 탈북자 50여명을 버스에 태워 북한으로 보냈고요.

올해 7월 2일에 눈길을 끄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리진쥔 북한 주재 중국 대사가 중국 공산당 100주년 경축 리셉션에 화교들을 잔뜩 초청해 ‘중화의 아들 딸’이니 어쩌니 하면서 비행기 태우며 칭찬했던 겁니다. 이상하다 싶었죠.

그런데 보름 쯤 지나 화교들이 중국으로 대거 보내졌습니다. 물론 비공개로요. 그러니 중국 대사가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됩니다. 화교들이 중국 대사관에 몰려가 빨리 보내달라고 성화를 엄청 해대니 중국 대사가 이들을 얼리느라고 그랬던 겁니다.

어쨌든 1차로 대거 중국에 나갔는데, 그때 못간 사람들은 어떤 심정일까요.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나아질 것 같다는 기대도 있었겠지만, 지금 보니 이게 끝이 아닌 겁니다. 그래서 지금 북한에는 중국에 보내달라는 화교들이 넘쳐납니다. 그런데 북한은 국경 열지 못한다고 보내지 않고 있죠.

지난달에 북중 열차 재개가 임박했다는 소식이 발표됐는데, 이때 문이 열리면 중국에서 급한 북한 외교관이나 무역일꾼들이 귀국하고, 반대로 북한에선 화교들이 우르르 나올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소식이 전해지지 않고 있죠.

북에 있는 화교들이 왜 지금까지 거기에 있었겠습니까. 북한 국적의 배우자와 자녀들을 버릴 수 없어 있었던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극한의 상황에 몰리니 가정이 해체되는 겁니다. 같이 굶어죽겠습니까. 나라도 살아야 입이라도 덜고, 또 중국에 나와 돈을 벌어놔야 집에라도 보내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화교만 먼저 빠지는 겁니다. 가족과 이별하고 탈북 도미노가 벌어지는 겁니다. 물론 모든 화교에게 해당되는 일은 아니겠죠. 아직 버틸 여력이 있는 화교는 더 많겠지만, 어쨌든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북한 내 화교가 다시금 확 줄어들 예정입니다. 이렇게 나오면 북한이 나중에 다시 오라고 받겠습니까. 절대 안받죠.

왜냐. 북한은 이번 기회에 눈엣가시 같은 화교들을 정리할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북한 당국의 시각으로 봤을 때 화교들은 여러모로 거의 도움이 안 됩니다.

우선 화교들이 코로나 전에 장마당에 중국 물건을 사서 들여왔지만, 이건 북한 무역일꾼들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오히려 화교들 때문에 돈 좀 있는 무역회사들이 경쟁자가 생기는 셈이고, 화교들은 물건 팔아 번 돈을 자기가 가지기 때문에 무역회사처럼 당국에 의무적으로 내는 돈도 없습니다. 북한 내부 돈이 화교들의 수중에 가는 것이죠.

둘째로 화교들이 잘 사니 북한 내에 미치는 영향이 안 좋습니다. 중국이 잘 사니 저 사람들만 부자가 되고 우린 왜 이 모양이냐며 북한 사람들이 푸념하게 되는 겁니다.

셋째로 화교를 통해 정보가 많이 유출됩니다. 중국에 나와서 북한 내부 사정 외부에 전하는데다, 국경에 사는 화교는 통화도 자유로우니 중국에 비밀을 막 말하는 겁니다.

넷째로 탈북을 막으려니 화교가 방해가 됩니다. 화교 중에는 탈북민들이 북에 보내는 돈을 중개하는 사람도 꽤 있습니다. 돈이 있고 중국에 연고가 있으니 돈놀이 하는 셈이죠. 그렇다고 막 잡아 죽이기도 어렵고 골치가 아픕니다. 한국의 탈북민이 북에 보내는 돈은 북한 가족이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이게 탈북 비용으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솔직히 이젠 한국에 연고가 있어 돈을 지원받지 못하면 탈북이 어렵습니다.

이렇게 여러모로 북한 당국이 골치가 아픈 화교가 코로나 사태로 자기 발로 중국에 나가겠다니 김정은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저것들 싹 다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아무튼 북한 당국의 의도와 코로나로 인한 경제난으로 북한 화교가 점점 씨가 마르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가 볼 땐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북에 외부와의 끈이 더 많이 남아있는 것이 좋죠. 화교들까지 사라지면 북한은 진정한 그들만의 수용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