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광고 없는 북한TV에서 식당 광고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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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2.01.24 18:58


북한의 대외용 월간지인 ‘조선’ 10월호를 보니 ‘흥성이는 상업구’라는 제목으로 여명거리종합상업지구 방문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상업지구라 하면 70층짜리 아파트 아래에 있는 쇼핑몰로 총 4층 규모인데, 상점과 식당, 전시장, 약국, 꽃방, 사진관 등이 집중적으로 배치돼 있다고 합니다. 상점이 20개 정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평양냉면, 평양온반을 비롯한 식당들도 많다고 하면서 이 거리가 아주 인기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북한 뉴스를 보면 실제 내막을 아는 사람들의 눈에는 참 재미있는 사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평양의 식당 간의 치열한 생존 경쟁 내막을 설명해 드리려 합니다. 듣고 보면 몰랐던 재미있는 사실들일 것입니다.

김정은 시대 평양에 건설된 대표적 거리를 꼽으면 건설 순서대로 창전거리, 미래과학자거리, 여명거리를 들 수 있습니다. 미래과학자거리는 2015년 11월 완공됐는데, 2400세대 규모입니다. 이쪽은 기존에 살림집들이 거의 없던 곳에 지어서 철거 세대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 거리의 대다수 살림집은 거의 교원, 연구사들에게 배정됐습니다.

제가 취재해 본 바에 따르면 김책공대 교원들에게 700세대 정도가 돌아가고, 김일성대를 제외한 기타 평양 시내 대학 교원, 연구사들에게 대학별로 수십 세대 정도씩 배정됐는데, 이렇게 되면 일반 대학에선 학부장이나 당 비서 같은 간부들이 우선적으로 좋은 집을 배정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2017년 4월에 여명거리가 완공됐습니다. 여명거리 입주 세대는 4800세대로 미래과학자거리에 비해 2배 정도 큽니다. 여명거리를 대표하는 70층 아파트는 김일성대 교원들에게 통으로 분양이 됐습니다. 1년 반 정도의 시차를 두고 두 거리가 완공됐는데 사실 둘 다 위치도 괜찮고 평양에서 인프라도 비교적 발달한 지역이어서 여기에 입주하면 사람들의 부러움을 삽니다.

거기에 교원, 연구사 세대에는 매달 밥을 지어 먹는 데 쓰는 LPG 가스도 1통 정도씩 공급되는데, 이거 시장에서 돈으로 살려면 20~30달러 정도 줘야 합니다. LPG 가스통은 중국에서 들여온 것인데, 가스가 채워져 있는 ‘정품’ 가스는 80달러 하지만, 2차로 넣어진 가스는 가격이 많이 떨어져 20~30달러에서 거래되고, 빈 가스통은 15달러면 구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빈 중고 가스통을 구입해 인민반별로 모아 한꺼번에 가스를 따로 넣어 와 사용하는 겁니다.

아무튼 이 두 거리의 아래층들에는 편의봉사망도 발달됐고, 상점, 식당, 약국, 이발소, 미용소, 목욕탕은 물론 소공원과 산책길, 북한에선 산보길이라고 하는데, 이런 길까지 다 잘 돼 있습니다. 4층 상업망 중에 제일 아래층에 대개 호화 식당들이 즐비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문제는 거리에 사는 거주자들이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이 아닌 교원과 연구원 들이라 구매력이 높지 않다는 것입니다. 돈 많은 사람들이 와야 매출이 오르겠는데, 그게 안 되죠.

그런데 두 거리 중에서 나중에 완공된 여명거리가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미래과학자거리가 먼저 준공되고, 거기 식당들이 깨끗하고 위치가 좋고 시설이 최신식이라는 점을 이용해 평양 전체의 수요를 흡수했던 것입니다.

미래거리에서 제일 잘나가는 식당 중 대표적인 것이 제일 높은 ‘기폭아파트’ 아래에 있는 전문잔치식당인데, 한국으로 치면 예식장입니다. 이곳은 한달 전에 예약을 해야 겨우 자리를 잡는다고 합니다. 건물이 깨끗하고 요리도 수준급이지만, 제일 눈길을 끄는 것은 식당에서 준비한 ‘예술 공연’인데, 접대원은 물론이고 주방 요리사까지 나와 공연에 참가하는 것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웃기는 것은 그 요리사들의 노래와 무용 수준이 전문 배우 찜 쪄 먹는 수준이라고 하네요. 나중에 평양에 관광을 가면 기폭아파트 잔치식당을 다녀오시기를 추천드리는 데, 한국 사람이 가도 요리사가 나와서 노래하고 춤출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식당은 물론 코스에 따라 가격이 좀 다르지만, 하객 1인당 보통 12달러 정도 내고, 그 외 큰상 가격과 추가 봉사가격을 따로 지불하는데, 하객이 100명 이상 오면 2000~3000달러는 써야 합니다. 그런데 높은 간부가 결혼하면 이 정도 돈만 들어오겠습니까.

아무튼 기폭아파트 진치식당 뿐만 아니라 다른 식당들도 인기를 끌면서 후발주자 여명거리 식당들은 머리를 싸매게 됐죠. 어떻게 하면 평양 돈 많은 사람들이 몰린 미래거리 고객들을 끌고 올까.

그래서 여명거리 식당들이 채택한 전략은 적극적인 광고였습니다. 이러면 놀라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상품 광고를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취급하는 북한에서 광고 영업이 가능하다니 웬 말이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북한에선 국영방송인 조선중앙TV에서도 ‘상업 광고’가 공공연하게 방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광고 방식을 우리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데, 바로 평양식 광고 방식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광고를 합니다. 조선중앙TV 기자와 촬영 기자, 아나운서 몇 명 불러서 한 끼 잘 먹이고, 각자 100~200달러 정도 쥐어줍니다. 그러면 며칠 뒤 조선중앙TV에 이런 식의 리포트가 나옵니다.

‘당의 사랑과 은정 속에 붐비는 여명거리 평양냉면집’ 이런 식으로 시작되고, 먼저 냉면집 겉모습 한 번 싹 보여주고, 그리고 내부에 들어가서 “오늘도 이 식당에선 김정은 장군님의 은덕에 감사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맛있는 냉면을 들며 즐거워합니다”고 하면서 내부 한번 또 싹 보여주죠. 이때 손님은 식당 사장이 다 끌고 오는데, 우리 식당 광고하는 거 생각하면 똑 같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지배인이 나와서 “우리는 장군님이 말씀대로 더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러는 겁니다. 그리고 네 번째로 다시 식당 한번 싹 카메라 돌리며 “오늘도 여명거리 평양냉면집에선 당의 은덕을 노래하는 행복한 웃음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끝납니다.

이런 내막을 모르는 한국 사람들이 북한 티비를 보면 “재네는 왜 맨날 틀면 장군님, 장군님이야. 어우 지겹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을 보는 평양 사람들은 다릅니다.

장군님 소리는 이미 귀가 자동으로 걸러듣고, 그들이 집중하는 것은 “어, 저기 냉면집이 새로 생겼네. 사람도 많네. 시설도 깨끗하네. 나중에 한번 가봐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이왕 식당에 갈 바에는 텔레비전에 소개된 그 식당 한번 가보자” 하는 심리는 남쪽이나 북쪽이나 다 같습니다. 그리고 먹어 본 사람들이 괜찮다고 평가하면 그 식당은 성공하는 겁니다.

기자들도 월급 받아봐야 얼마 안 되니까 이런 식으로 가서 르포 하나 만들어주고 뇌물 받고 먹고 사는 겁니다. 월간지 ‘조선’ 10월호에 실린 여명거리 상가를 홍보하는 기사도 뇌물 받고 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북한에만 존재하는 이런 유형의 광고를 뭐라고 해야 할까요. ‘은덕 감사형’ 광고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리 틈이 없어 보이는 폐쇄 사회라도 사람들은 다 그 안에서 이런 식으로 나름 머리를 쓰며 살고 있습니다. 오늘 방송 재미있었나요. 몰랐던 얘기 재미있었다면 구독, 좋아요 눌러주십시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